후민과의 대화

이후민은 미술교사이자 작가이다.
유진과는 7년 전부터 함께했다.
01
현재 교직과 작업을 병행하고 계시잖아요.
오늘 대화에서의 호칭을 정하고 싶은데요,
작가님이랑 선생님 중 어느 쪽이 마음에 드세요?
너한테는 그냥 선생님이 낫지. 만약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선생님이라고 말하기 싫어. 평소에 이 직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내 꿈이랑은 사실은 다른 길이기도 하고.
사실은 임용을 3년을 공부하고 교직을 처음에 왔을 때 월급을 보고 '내가 이 월급을 받으려고 이 짓을 했나' 싶었어 솔직한 얘기로. 물론 지금은 작가로만 하면 더 굶어 죽을지도 몰라.
그렇긴 한데 사실상 이제 교직을 계속하게 된 계기가 네 내가 처음에 태안이라는 곳에 발령을 받았거든. 지금은 폐교된 아주 작은 학교였는데 학생 수가 1, 2, 3학년 다 합쳐서 34명이었어.

- 학생수가 진짜 적었네요.

맞아. 그런데 내가 성격상 약간 완벽주의인 경향이 있더라고. 사실 그때는 신규기도 했고. 주어진 일들을 다 내 일인지 아닌지도 분간 못하고 다 했으니까. 그러다 보니까 실제로 2년 차 때 같은 경우는 1시간 자고 출근한 적도 있고 되게 힘들어 하고 있는 상태였어.
그런데 애들이 물어보더라고. 선생님은 몇 년 있다 가실 거예요. 왜 물어봤냐면 거기는 선생님들이 1년마다 거의 떠났어. 젊은 선생님들 같은 경우는 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곳은 시골이기도 하고 너무 외진 곳이었으니까. 나 같은 경우도 그런 부분이 있었지만서도 일단은 걔네들이 그렇게 물어보니까 이제 너희들까지 졸업시키고 갈게라고 말해서 3년을 있게됐어. 그러면서도 이 직업을 계속해야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지.
02
미술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신건가요?
만화를 되게 좋아했어. 내가 어릴 때는 만화 책을 많이 보던 시대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좋아했지. 고등학교 때 같은 경우는 실제로 내가 작은 만화책 같은 것들을 그렸었어. 대단한 만화책은 아니고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로 그 하루 일과를 그렸지. 그런 식으로 만들어서 우리 반 애들이 돌려다 보고 그랬었어.

- 나름 인기 작가셨는데요.

하여튼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미술학원에 갔는데, 미술학원을 가보면 알겠지만 미술학원에서는 선택을 하게끔 하지. 수체하든지 혹은 디자인이라든지. 나는 수채화가 마음에 들어 수채화를 시작했어. 소묘는 필수였고.그런데 그걸 다 하고 나니까 서양학과 처럼 갈 수 있는 과들이 이제 한정이 되잖아. 만화과라는 것이 우리 때는 거의 없었어. 만화가가 있더라도 전문대 형태였고 그 당시에는 웹툰이나 이런 것들이 시작되지 않은 시대였으니까. 웹툰은 2천년대 초반에서 중반 넘어가는 그 시기 때부터 흥행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그런 전망을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지.
그러다 보니까 만화학과를 가지 않고 사대를 가게 되었어. 내가 몰래 미술을 하다가 부모님께 걸렸는데 사대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승낙해줘서 가게됐어. 그리고 나서 대학에서 서양화를 시작하게 됐지.
03
작업에 있어 어디에서 영향을 많이 받으셨나요?
내 그림은 20대까지 거의 우울했어 지금도 사실은 밝지는 않은데, 중학교 올라가는 시점에서 어떻게 보면은 희한한 책을 받은 거지.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이라는 책을 선물 받아. 그 당시 93년인가 92년에 베스트셀러였거든. 철학 책인데 거기에서 인생에 대해서 허무주의적인 관점으로 이야기했어.
내가 그 책을 되게 좋아했는데 그것들이 자리 잡으면서 대학교 때 회화를 접하고 하다 보니까 회화가 나한테 적합하더라고. 어떤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만화보다는 순수 미술 네 그것들이 더 좋아진 거야.
그 책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에서 영향은 있었어. 왜냐하면 내가 강원도에서 12년을 컸는데 대전으로 이사 오면서 아이들 텃새 때문에 사실은 왕따도 당했었고. 그리고 나서 학창시절에는 쌈박질을 되게 많이 했었어.
그러면서 관계에 있어서 사실은 사람을 깊이 있게 만나거나 하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게됐어. 그리고 20대 말까지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자화상을 거의 그려왔어.
04

20대에 자회상을 열정적으로 그리신 이유가 궁금한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림을 한 1년 반 정도 쉬었어. 내가 그림을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더라고. 그리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무엇을 그려야 할지를 잘 모르겠더라. 물론 그 중간중간에 다른 것들도 그려온 것들 그리고 싶었던 게 있었지만 진심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이 뭘까라는 것들. 지금도 사실은 계속 그런 것도 고민하고 있어. 그런 것들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릴 마음이 들지 않았어.
그러면서 생각을 했지 내가 왜 자화상을 그렸을까. 나는 아버지랑 친하지 않았었어. 아버지가 미술을 하는 거에 대해서 좋게 생각을 안 하셨으니까. 임용에 떨어졌을 때도 아버지가 그러니까 미술을 왜 했냐는 식으로 많이 얘기를 하셨고. 그니까 아버지랑 많이 아버지랑 둘 다 성격이 강해서 많이 다퉜거든.
심지어는 아버지가 임종하는 순간까지 나는 아버지랑 얘기를 안 했어. 그게 제일 후회돼 사실은. 아버지 돌아가시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돌아가시는 아버지 앞에서 아무 얘기를 안 했어. 그냥 되게 원망스러웠어.
지금 생각하기는 아버지와 나 둘 다의 문제였어. 그런데 그때는 대화를 못했지. 자화상을 그렸던 이유가 사실은 어떤 나를 계속 어필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기에는 그래.
05

지금은 캐릭터를 많이 그리시잖아요.
캐릭터를 소재로 작업을 하시게 된 계기는 뭔가요?
캐릭터 작업은 사실 20대 부터 생각을 했었던 거야. 근데 그것이 이제 본격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었지. 내가 그림을 특별히 그리고 있지 않았을 때 우연히 다시 그리게 된 것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캐릭터더라고. 어렸을 때처럼 만화를 따라 그리는 식이었지.
그렇게 캐릭터를 그려오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많이 슬퍼하셨어. 그 과정 속에서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늙은 노부부나 중장년의 부부들을 보면서 되게 부러워하시는 거야.
그러면서 생각을 했는데 나는 늙는 게 그렇게 슬프지 않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갖고 있으니까 그건 있을지언정 함께 늙어가는 거에 대한 것들은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더라고. 사실 진짜 오래 살아서 우리 어머니가 한 500살쯤 살면은 나는 한 470살 정도 될 것이고 그러면 둘 다 주름이 쭈글쭈글해도 기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서 늙은 캐릭터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어. 2012년도에 이 정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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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직업만으로도 바쁘실 텐데
꾸준히 작업을 하시게 되는 원동력은 어디서 오나요?
언제까지 자신의 전시가 있으면은 그 전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하는 것들도 있어. 그런데 그전에 작업을 일정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돼야 되거든. 사실 내가 직업을 가지면서 이렇게 여건을 갖는 것이 제일 어렵더라고.
근데 마찬가지로 다른 작업을 하시는 분들도 유명하고 성공하신 분이 아니시라면 작업에만 매진할 수는 없잖아. 그런 사람들도 마찬가지 고민을 하더라고. 하루에 몇 시간을 가져가느냐 이것들도 있긴 하지만 하루에 조금이라도 그냥 하려고 일단 앉았어. 여름에는 전시를 일단 잡아놓고 달리고 있는 시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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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작업 중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작품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라소스를 가장 좋아해. lasource 두 개의 캔버스가 마주 보고 있는데 일단은 첫 번째 블랙 바탕에 있는 것은 원래의 색감 그대로 가져갔어.
발이 물에 적셔지고 발이 뛰어오르면서 물이 튀기고 있잖아. 말 그대로 샘이야. 이거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렸냐면은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엄청난 제약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 아이는 고여 있는 물에서도 막 뛰고 싶어 하잖아. 아이들은 고여 있는 물에서 뛰는 것에 대해 아무 걱정 안 해. 그 순간이 그냥 즐겁거든. 너 고여 있는 물에서 지금 뛰어보라면 뛰겠어?

- 안 뛰죠

왜? 우리는 옷이 덜어질 것도 알고 있고 그 순간의 즐거움이나 이런 것들에서 이미 멀어진 상태거든. 그래서 근원이라는 제목을 붙였어. 어떤 시절이나 이런 곳에서 생각하는 놓쳐버린 것들 그런 것들을 생각했어. 어떻게 보면 불안해 보이고 그리고 가면을 쓰고 있지.

다음에는 색감을 경쾌하게 가져가면서 아담처럼 주요 부위를 가리고 있어. 뒤러가 그렸던 아담의 형태를 그대로 가져갔는데, 원래 나뭇가지의 사과가 매달려 있어야 되는데 그 사과가 물에 떨어져. 그러면서 발이 아닌 사과에서 물이 탁 튀지. 발에는 그림자 만이 있어.
사실은 우리가 선악과를 집어든 순간 네 어떻게 보면은 아담은 어린 시절에서 멀어진 걸 수도 있어.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또 다른 근원이 생겨날 수도 있지. 이렇게 수수께끼처럼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좋아.
08

작품 활동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랑
가장 행복했던 경험을 말씀해 주세요.
행복했던 경험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일 좋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것을 어떤 인정을 받고 그런 얘기들을 같이 공유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들에 대한 메시지에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관객이 있을 때지 사실은. 어쩌면 미술가는 작품을 놓고 관객들이 볼 수도 없을지라도 기다려. 관객과 만나는 현장성이 사실은 제일 좋은 걸 거야. 그러면서 그 안에서 연결되는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을 때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내가 같이 숨 쉬고 있구나 이런 것들을 느끼는 거지.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상실감을 느끼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나와 공유할 수 없는 사람들과 같이 살기 때문이거든. 그래서 내 세계에 있다는 것이 생겼을 때가 제일 좋아. 힘든 거는 아무래도 내 세계가 사실은 너무나 적은 시간에 한정돼 있다는 거지. 맨날 피곤해. 피로를 참고 하는 거야. 작업하는 시간을 확보하자고 점심시간에 남들은 급식실 갈 때 난 도시락 한 5분 동안 까먹고 그러고 나서 바로 작업 들어가. 쉬는 시간에도 계속 작업하고 그래서 하루에 쉬는 시간 거의 없어.
09

제가 추석 때 연락드렸을 때
꿈을 쫓으며 고민이 많은 계절이라고
하셨는데 그때 그 고민의 정체는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꿈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세요.
그 고민은 사실은 작업에 대한 고민이지. 사실 내 작업이 잘 팔리는 작업들은 아니야. 아예 극사실도 아니고 완전 수작업 냄새가 나는 그런 작업이 아니고, 늙었기 때문에 또 안 팔리는 것도 있고.
그때까지 작품이 팔린 게 하나밖에 없었어. 내가 이걸 하고 싶은 하고 싶은 상황에서 바꾸면 팔리고 안 팔리고가 중요한 거는 아니라는 것을 내가 지금은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한 번씩 밀려오더라. 내가 어떤 의미에서는 초라해 보이는 거지. 물론 돈으로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 것에 대한 어떤 가치가 산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서 내 가치라는 것들에 대해서 조금씩 흔들리는 거지. 그럼 모든 사람들이 다 갖고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꿈은 이 작업의 끝을 보는 거지. 아직은 모르겠고 끝도 없지만. 그것도 있고 사실은 내가 사람들이랑 그렇게 잘 어울리고 그런 성격도 아니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또 그리워하는 것도 있어. 지금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업하고 있는데 내가 가진, 나랑 연을 맺은 사람들이랑 그렇게 최후의 내 그림 속에서처럼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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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주세요.
지금 생각 드는 건 원이야.

-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다고 하셨는데 원이 완벽함의 상징이어서 그런가요?

원은 완벽한 도형이지만 자기가 어디를 돌고 있는지를 몰라. 멈추지 않고 길을 따라 계속 구르며 자기가 완벽함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자기가 어느 지점에 정확히 위치하는지를 모르지. 나는 그런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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